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마 공화국 (문단 편집) === [[카이사르의 내전]] === 그 뒤 [[카이사르]]는 전직 [[집정관]]의 자격으로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여 8년간의 기간 동안 갈리아 전역을 로마 패권하에 제패하는 업적을 쌓는다('''[[갈리아 전쟁]]'''). 카이사르의 뛰어난 정치적인 수완과 군사적 업적으로 인한 높은 명성을 극도로 경계한[* 애시당초 카이사르는 원로원과 대립하는 민중파의 거두였다.] [[원로원]]은 카이사르를 제거하기 위해 카이사르에게 임기 종료 뒤 군사 지휘권을 반납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집정관 선거에 나서라는 요구를 했다. 카이사르는 군사 지휘권을 반납하는 순간 정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지휘권을 반납하고 이탈리아 땅을 밟는 그 즉시[* 이전에는 로마 영토부터라고 했지만 로마 영토가 아니라 이탈리아 부터다. 원래 도시국가 로마 내에는 군대를 들이는 것은 금지되었고(물론 술라가 진작에 그 전통을 파괴했지만) 교외에서 혼자 들어오는 것이 전통이었으다.(물론 정말로 혼자 오지는 않았다. 당연히 지휘관 정도면 급수가 있으니 자기 추종자나 가솔들과 같이 왔을 것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에서 불후의 명언인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한 것도 그 루비콘 강이 바로 이탈리아의 영토 경계선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탈리어 영토부터 혼자 오라는 것은 뜬금없는 소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도중에 카이사르를 암살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로마 원로원은 원로원 최종권고를 통해 이런 짓을 실컷 자행해왔던 전적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선택할 길은 사실상 암살을 당하든가 원로원 최종 권고에 의해 맞아죽든가 둘 중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원로원에 군사 지휘권을 유지한 상태로 출마하는 등 여러 가지 타협안을 제시하였으나 원로원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저항도 제대로 못 하고 잡혀 죽은 그라쿠스 형제와는 달리 '''군대를 이끌고 있었고.''' 또, 8년간에 걸쳐 갈리아를 평정했다는 명분도 있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온 자신에 대한 원로원의 부당한 처우를 로마 시민들에게 호소하며[* 당시 카이사르의 부하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보다 한발 앞서 로마로 돌아와 호민관에 선출되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카이사르의 집정관 선거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갈리아 원정군을 소집하여 이탈리아 본국으로 쳐들어오니, 이리하여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